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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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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주
기사입력 2021-04-07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요즘 나는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전보다 기억력이 줄어들고 있고 물건을 놓은 장소를 혼동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깜박하기도 한다. 가끔 내가 천재가 되어 내가 듣고 보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얼마나 신날까 상상하기도 한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모든 것이 다 기억난다면 과연 행운일까 불행일까 생각하다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장편소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게 되었다. 뛰어난 운동선수이던 주인공이 경기중 사고를 당해 심장이 정지된 후에 다시 살아나면서 삶과 인간성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뇌에 심각한 외상을 입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지만, 극심한 충격을 받은 주인공의 뇌는 살아남기 위해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완벽한 기억력을 갖게 되었다. 주인공의 머릿 속에 저장 용량이 무한대인 카메라를 설치한 것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아무 것도 잊지 못하는 남자가 되었다. 또 하나는 점차 발전하는 공감각이었다. 예를 들면 죽음을 색깔과 연관지어 느끼거나, 숫자가 입체로 나타나면서 공격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뇌의 변화와 더불어 성격도 변했다. 사교적이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던 농담꾼은 사라지고, 타인의 말에 사소한 거짓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며 비사교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이 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캐릭터이지만 이 주인공만의 흡인력은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나타난 능력에 휘둘리고 그 능력때문에 고통받고 그 과정에서 맺는 인간관계에서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니까 실수도 하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직업이 형사라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건에 대한 정보를 불러올 수 있고, 사진처럼 현장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능력 덕택에 수사에 도움이 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과잉기억증후군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가족이 살해된 장면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매일 밤 기억하는 것은 저주라고 느껴진다. 먼 미래가 배경이고 주인공이 아주 능력이 뛰어난 로봇이 등장하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 로봇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자신이 망가질 정도로 참혹한 기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삭제하여 재프로그래밍을 받아 다시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만약 그럴 수 없는데 기억의 대부분이 참혹한 현실로 가득하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제목이 같은 또 다른 책도 있다.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가 쓴 저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한 기억술사의 삶으로 본 기억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로 R. 루리야는 어느 날 기억력 검사를 받고 싶다며 찾아온 신문사 기자 S라는 남자와 만난다. 처음에 큰 기대가 없이 검사하던 루리야는 이 남자의 기억력이 말 그대로 '무한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기억력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S는 전문 기억술사가 되어 관객 앞에서 자신의 비상한 기억력을 선보이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그의 기억력은 기억술의 과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더 풍부하고 놀라운 면모를 지니게 된다.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인간인데 30년 전의 일도 바로 눈앞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는 신문기자. 신기하게도 그는 기억하는 방식이 매우 색다르다. 어느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샛노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을 받고, 1이라는 숫자에서는 덩치가 큰 남자를 느끼고, 초록색이라는 단어에서는 초록색 꽃병을 느끼고, 과일 맛 아이스크림을 팔던 아주머니의 입에서는 석탄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생각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신문기자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뇌의 10%도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이것 역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우리 뇌의 50%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면서 다음 책을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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