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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도 명도구곡과 명도구곡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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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홍 대표이사
기사입력 2021-02-25

  

올해로 기미독립 만세운동 102주년되는 해이다.

 

그 동안 충주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구곡의 설성과 구곡시가 발원됨으로써 기호학파들의 존화양이론과 척사위정론으로 항일 투쟁에 가담함은 물론 은밀한 계곡에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시를 지어 결속을 공고히하고 항일에 대한 논의 장소로 활용했다.

 

화서 이항로 선생과 의암 유인석 선생의 문하생으로 입제 이범식 선생이 설정한 명도구곡이 충주에 있음이 충북의 구곡과 구곡시를 펴낸 문학박사 이상주 교수에 의해 밝혀졌다.

 

이를 토대로 충주의 명도 구곡을 분석한다. <편집자주>

 

◇ 명도구곡(明道九曲) 설정과 이범식(李範植) 선생

 

충주에서 명도구곡과 명도구곡가가 설정되어 있음이 밝혀진 것은 2008년 당시 극동대 외래교수와 청주대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던 이상주 박사에 의해서다.

 

이상주 박사는 충북의 구곡과 구곡시를 편찬하면서 충북의 구곡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던 중 이범식 선생이 지은 입제집(立齊集)과 입제선생 묘갈명을 통해 밝혀내게 된다.

 

1999년부터 한국의 구곡과 구곡시를 조사 수집 연구를 해온 이상주 박사는 명도구곡을 입제집에서 확인하면서 충북에 총 23개 구곡이 설정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명도구곡을 설정하고 명도구곡가를 지은 이범식 선생은 전주이씨로써 초명은 범서 또는 범정이라고 했고 호를 입제 자는 사홍(士洪)이다.

 

1879년 출생하고 1958년 서거했다. 동량면 용교리 용대 마을에 거주하면서 약관의 나이에 의암 유인석 선생을 배알하니 매우 애중하여 입제라는 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후 금계 이근원 선생과 경제 양두환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또한 선생은 유가의 경전과 제가의 책을 두루 섭렵했고 천인성명의설과 체용(體用)을 함께 온전히하고 강목을 해박하게 갖추고 사서를 이해하고 몸소 실천하였으며 공경함과 근면함을 일상생활화했다.

 

또한 형제 자매와 이웃에게도 은혜를 두루 베풀었다. 스승에 대한 도리를 다하였고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된 후에도 의연히 자신을 지키고 변치 않았다 한다.

 

선생은 율곡과 우암 그리고 화서 이항로 선생과 성제유중교, 의암 유인석 선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로 이를 쫓아 한결같이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였다고 한다.

 

기호학파는 존화양이 척사위정론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하는 것과 안전하고 은밀한 계곡에 도통계승의 상징으로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시를 지어 사람들의 결속을 공고히했으며 항일운동을 논의하는 집회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한 교육과 학문을 통해 구국대열에 설 인재를 양성하고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기류에 따라 화서학맥의 문인인 이범식 선생은 도통계승의 상징으로서 명도구곡을 설정하고 명도구곡가를 창작했다.

 

같은 화서학맥인 박세화(1834~1910) 선생도 충북 제천 덕산면 억수리 일원에 용하구곡을 설정했던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송나라 대학자 정호 선생이 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자신의 자를 명도라 했다.

 

이에 이범식 선생도 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구곡의 명칭을 명도로 한 것이다.

 

“구곡이라 맑고 깊은 명도천, 오직 장담의 활기찬 물결과 이어지네”라는 싯귀의 구절과 같이 장담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장담리 마을이다.

 

화서의 제자 성제 유중교 선생이 이곳에 자양서사를 건립하고 화서학맥을 전수 계승하였다.

 

이범식 선생은 명도구곡 상류에 있는 장담이 성제 유중교 선생이 강학했던 곳과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명도구곡의 위치와 명도구곡가

 

입제 이범식 선생이 명도구곡 설정와 명도구곡가를 지은 연대는 대략 1935년 쯤이다. 입제집 서문에는 개천원 팔경에 대해서 쓴 시가 있다.

 

개천안 안에 신령한 구역이 있어

십리 맑은 시내 아홉 구비 흘러가네.

일엽편주 흔들흔들 여울위로 떠가니

노젖는 노랫소리 삼첩에 세속의 근심을 씻어버리네

통틀어 개천 안이라 부른다.

 

이는 입제집 서시이다. 명도구곡가의 명도리라 이름했다. 선생은 서두에 구곡의 명칭과 구곡의 위치를 기술했고 구곡의 범위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명칭도 기록했다.

 

또한 구곡의 9개시가 끝나는 곳에 마을이름, 지명, 바위이름, 절벽 이름을 기록해 놓았다.

 

명도구곡가는 10수 모두 주자의 무이도가의 운에 차운해서 지은 것이다.

 

명도구곡은 현재 충주댐 수몰로 인해 수몰되어 옛 모습이 많이 변화되어 안타깝지만 하다. 수몰되기 전 선경으로 느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제1곡 용추(龍秋)

 

일곡이라 감도는 백길 되는 못

신령한 용이 잠긴 곳 물이 깊고 아늑하네.

비 개일 때 비구름 장차 어느 날에

은은히 맑은 우뢰의 시끄러움 거둬들일꼬.

 

이곳 용추는 동량면 지동리에 있었다. 선생의 입제 집에 구곡의 명칭을 기록해 놓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편찬 과정에서 누락된 듯싶다. 그래서 이상주 박사는 시의 내용으로 보아 1곡을 용추라 명명한 것이다.

 

제2곡 미라곡(迷蘿)

 

이곡이라 악기 줄 튕기며 잔잔한 여울 올라가니

바위틈에 핀 꽃과 나무 덩굴 사이 달이 그림 가운데 보이네.

느리게 물가 서덜 따라가면 모름지기 마음이 편안해지니

인간의 살아가는 길 어렵다 말하지 마라

마을 이름이 미라곡이다.

 

제2곡 미라실은 동량면 도마리 미라실이다. 마을 이름을 미라곡이라 했다는 뜻이다.

 

제3곡 조오동

 

삼곡이라 높은 바위 올라가 자라를 낚는데

산모습은 푸름에 잠기고 바람 파도는 안정되네.

서서 산 밖의 티끌세상에서 싸우는 일 들으니

고난한 바다의 고래 같은 파도를 세상엔 피할 데가 없네.

이름이 조오동이다.

 

제3곡 조골은 인근 6개 마을의 중심지이다. 금잠, 미라실, 만지, 양아, 사방(식결), 조골 등의 중심이다. 마을 이름을 조오동이라 했다. 조오동은 자라가 살고 있는 못 즉 오담으로 전설에 자라의 등에 신선산을 지고 다닌다고 했다.

 

제4곡 무동

 

사곡이라 우뚝솟은 옥녀봉

봉우리 앞에 무동이 다듬어진 모습을 드러내네.

천년 후에 무이를 상상하니

홍무때의 의관 누가 더불어 따라줄꼬

 

제4곡 무동은 동량면 지동리 무동으로 섬 뒤쪽 산아래로 강물이 흘렀고 섬앞으로 지동 초등학교가 있었다.

 

제5곡 송평

 

오곡이라 송평길이 곧바로 깊숙해지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광경 기분 좋아 서로 찾아가네.

하늘아래 월굴에 진기가 들어나고

절벽 풍류벽에 만고심이 드러나네.

 

제5곡 송평은 동량면 하천리 마을앞 개울가로 500여 평의 백사장과 4만평 정도의 밤나무 그늘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놀러 왔던 곳이다. 앞에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속아있고 바위틈에 갖가지 나무가 자라고 있어 형상이 기이했다. 그 이름은 풍류신이라했고 그 아래를 풀유 소라고 했다. 시에서 월굴은 바위 이름이고 풍류는 절벽의 이름이다.

 

제6곡 만천

 

육곡이라 만천 갓 끈을 씻을 만하고

차가운 물결 한줄기 유독전체가 맑아라.

저 시내에 묻노니 어떻게 맑디맑은 기운 얻어

천년토록 도도히 오래도록 물소리를 내는고.

 

제6곡 만천은 동량면 하천리에 있다. 현재 하천 대교 위쪽 하천이 만천이었다. 만천이 끝나는 곳이 산척면과 경계지역이다. 갓 끈을 씻을 만하다는 맑아서 세상의 풍파를 잊을만하다는 뜻같다. 굴원의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청량의 물이 흐리거든 내발을 씻겠노라 라는 구절도 인용한 듯하다.

 

제7곡 수담

 

칠곡이라 얼음꽃 巴字(파자) 모양으로 감도는데

밝은 거울같은 맑은 못 마음에 들어와 열리네

잔 물결 일지 않고 미풍도 고요한데

모래밭 갈매기떼가 물을 차고몰까 두렵도다.

 

제7곡은 수담으로 이름 지었고 오래된 못이 巴字(파자) 모양으로 감돌고 맑은 못이 거울 같아 사람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곳이다.

 

제8곡 솥바위

 

팔곡이라 정암은 못으로부터 솟아났는데

물결의 그림자 구주도를 살아나게 해주네.

근래 동서간에 하늘의 물결이 넘치는데

신령한 도끼로 용을 깍아 낼 때도 달라지지 않네.

 

제8곡 솥바위는 산척면 명서리(옛지명 명도리) 정암이다. 정암은 못 가운데 솟아있으며 물결의 그림자가 구주의지도 형상을 느끼게 해준다. 동서간 조류가 넘쳐오지만 바위는 변함없이 서 있다. 이는 선생이 당시 불안한 시국을 한탄한 것으로 시국은 위태롭지만 정암은 의연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9곡 명도천

 

구곡이라 맑고 깊은 명도천

아늑히 노를 멈춘 지 몇 년인고

출렁출렁 멀리 물의 발원지 알 수 있으니 오직 장담의 활기찬 물결과 이어지네.

 

제9곡은 명도천 즉 도를 밝히는 냇물이라는 뜻으로 유학의 도를 계승한다는 의지를 구곡의 명칭으로 삼아 자연에 표상화한 것으로 용하구곡과 더불어 도통의식을 구곡 명칭에 직설적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구곡시를 볼 때 명도구곡은 지금의 동량명 지동리 용추에서부터 산척면 명서리 정암 상류 명도천에 걸쳐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개천원을 중심으로 읊은 시가 이기진 선생의 명와집에 개천원 팔경가가 실려있다.

 

이기진(1869~1908) 선생은 을미의병때 의암 유인석 선생과 같이 활동한 분이다. 이범식 선생은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유학자의 시대적 역할을 자각하고 기호사림 화서학파들과 사우관계를 맺는다.

 

이들은 척사위정론과 존화양이론으로 항일 운동에 참여하는데 선생도 이들과 유대를 강화하며 동지들의 항일운동에 협조하였다.

 

선생이 살던 동량면 용교리 용대 마을은 의병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의병들과 교분이 많았다. 일본의 감시가 심해지자 의병을 말에 태워 보내기도 하고 수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출연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치암 김호경이라는 분에 의하면 선생이 당나귀 말안장에 총을 감추어 일본군 감시를 피해 목계까지 운반해 준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가전으로 전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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