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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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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훈
기사입력 2020-08-07

▲ 이대훈 청소년을 위한 미래설계연구소장     ©

의심은 ‘확실히 알 수 없거나 믿지를 못해 생기는 마음’으로 믿음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사람은 어느 경우에도 믿음과 의심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믿음이란 말 그대로 어떤 것 또는 어떤 사람의 말이 진실이라 믿는 것이고, 의심은 그것을 믿지 못하는 또는 믿지 않는 것이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보면 의심이 가장 많은 사람이 조조라는 말이 있다. 조조가 의심이 많아서인지 군웅 할거하던 그 시대가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삼국지에서는 이런 조조를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고 평했다.

 

이 말은 조조가 당대 명망을 떨쳤던 인물 비평가인 허소(許昭)에게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묻자 그가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답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이때 보통 사람이라면 벌컥 화를 냈겠지만, 조조는 오히려 어느 쪽이든 결국 천하를 움직이는 것이 자신이니 이름 없이 죽어갈 바에야 간웅이 낫다면서 웃었다고 한다.

 

의심이란 믿지를 못하는 마음으로 사람에 있어 가장 두려운 또 그럼으로 많은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의심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자신의 믿음이 배반당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은 믿음을 배신당했을 때가 가장 마음의 상처가 크다. 필자 역시 여러 번에 걸쳐 여러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사람을 깊이 믿는 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 자신보다 그 사람의 주위환경, 사업, 직장 등의 환경과 조건들이 그 사람을 배신해서, 결국 그 사람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사람 자신은 믿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들을 볼 때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려웠다.

 

지금 저 휴전선 넘어 북한 땅에서는 지금까지도 1인 독재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돼 눈과 귀가 막히고 오직 자신들이 섬기는(?) 독재자만이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또 자신의 나라만이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믿고 있다. 언젠가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날 때 저들은 자신들을 속여온 독재자 3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처리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속임수에 속아온 자신들의 무지와 무능을 탓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 그 나라를 떠나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 그 독재자를 향해 얼마나 저주와 증오를 퍼붓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알 수가 있겠다.

 

이와 같이 믿음에 대한 배신감은 사람들 마음에 상처와 의심을 심어주고 이것은 그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장애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곳에서 믿음에 대한 배신감이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더욱 무언가에 의해 강요된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고 머지않아 냉소적인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늘의 정치권은 자신들만 옳다고 강요를 할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단 국민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부동산 정책만 봐도 이제 국민들은 정부의 실시하는 정책을 믿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왜 이럴까? 그 이유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국민의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또 정권 실세란 사람들이 국민에게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보유를 비롯, 소위 고위공직자 비리 5종(학력 위변조, 부동산 투기, 병역 면탈, 위장 전입, 탈세)이라 하는 이런 것들이 근절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책도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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