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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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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기사입력 2020-01-28

 

잡초

 

                                                임연규(1954~)

 

창밖은 영하 17도 매서운 소한 추위에 몸을

꽁꽁 숨긴 황량한 들녘을 생각한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들풀 1백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세웠다는

토종들풀 종자이야기를 읽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밀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겁니다.

귀한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지금 나는 보리밭에 난 밀일까

밀밭에 난 보리일까.

 

지금 내 자리는 제 자리인가?

 

 

▲ 박상옥 시인     ©

풋콩을 까듯이 풋시(詩)를 읽는다. 갓 쓰여 진 시들에게서만 나는 풋내를 나는 좋아한다. 갓 태어난 시들은 나의 눈을 거쳐서 또 누군가 마음을 거듭거듭 거쳐 가면서, 시(詩)는 더욱 야물어진다. 콩꼬투리가 가지에서 떨어지듯, 시인에게서 떨어진 시(詩)는 껍질을 까서 들여다보는 사람에 따라서 마음을 움직이는 영물이 되기도 한다. 충주문학에 실린 시(詩) 한 편 껍질을 벗긴다. 한 세월이 피식, 빠져나간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 밀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고 / 보리밭에 밀이나면 밀 또한 잡초입니다. /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겁니다. 귀한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반성>이란 제목으로 읽히는 시 한편을 들고, 새삼 나도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본다. 때때로 술을 마시면, 술김에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서 지인들에게 문인들에게 문맥 없이 말빚을 지는, 작품 속 시인을 생각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가늠하는 시인을 따라 <잡초>란 시를 읽으니, 오늘 시인이란 자리는 오랜 세월 시인이 하루하루 쉼 없이 달려 온 시인이 만든 시인만의 자리다. 주변엔 온통 밀이 되는 문인들 보리가 되는 시인들이다. 시인은 ‘보리밭에 난 밀’일까, ‘밀밭에 난 보리’일까. 겸손하게 우문현답을 짚어 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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