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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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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기사입력 2019-12-10

▲ 김영희 시인     ©

‘눈 속에 꽃 피네 / 겨울 속에 꽃 피네 / 넝쿨 장미 나란히 / 자목련도 하나 둘 / 개나리 옹알옹알 / 얼음 바람 밤새 을러대도 / 한겨울 꽃 피네 / 그 향기 얼지 않으니 / 겨울은 홀로 어는가’

 

꽃들이 겨울 시를 쓰는 동안, 나는 추위만 가리고 허기만 채운다. 겨울은 깊어 가는데 꽃들이 자꾸 피어난다. 어느 나무는 새잎도 나오고 산수유 꽃송이도 가지마다 피어난다. 비 오고 눈 오고 나니 두 겹 세 겹 껴입어도 움츠러드는 요즘이다. 자연이 겨울잠 드는 사이에 몇몇 꽃들이 깨어있다. 겨울을 딛고 피는 꽃은 강하다. 겨울을 피해 가는 게 아니라 겨울에 맞서고 있다. 보드라운 꽃잎이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강하다. 이른 봄에도 눈 속에 봄꽃들이 더러 피어나지만, 나날이 따스해지는 봄날하고는 다른 것이다. 겨울을 노래하는 꽃들이 늘어난다. 겨울도 외로워 꽃이 보고 싶어 추위가 눅어드는 것일까. 기후에 변화는 자연이 자연을 가장 잘 느낄 것이다. 겨울에 피는 꽃은 기후의 변화를 알려주는 편지 같다. 어릴 때 매섭게 춥던 겨울보다는 차츰 누그러지는 느낌이다. 부드러운 것은 강해지고 강한 것은 부드러워지는가. 꽃이 겨울을 물고 겨울이 꽃을 물고 잘도 걸어간다. 지난번 넝쿨장미에 눈꽃이 내렸지만 서로 입맞춤 하듯 반가워한다.

 

겨울 꽃 하면 눈꽃 밖에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계절 없이 꽃 피니 벌이 꽃 앞에서 벌벌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요즘 겨울 논에는 소들의 겨울 양식인 볏짚 곤포 사일리지가 커다란 사발꽃처럼 하얗게 수놓고 있다.

 

땅은 이처럼 사계절(四季節)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내어준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데 인간이 아프게 하면 땅은 끙끙 앓는다. 땅이 아파서 끙끙 앓으면 그 아픔이 결국은 내게로 올 것이다. 또는 우리 미래와 만날 것이다.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꽃처럼 꽃이 겨울에 많이 피어나면 좋은 것일까. 겨울 없는 지구를 상상해본다. 겨울 없이 자연이 푸르면 지구는 쉴 새 없이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지구도 피곤하여 자원이 고갈 되지 않을까. 지구 어딘가에는 활화산이 끓고 있고 북극에서는 지구가 얼음에 덮여있다. 지구에서 난 것은 다 지구로 돌아간다. 꽃은 꽃으로 돌아가고 돌은 돌로 돌아간다.

 

지구도 어쩌면 스스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 있게 잘 돌아가도록 정치를 하는 것이다. 햇볕 나눔 달빛 나눔 골고루 펼치다보니 지구는 속도위반하지 않는다. 지구는 물불이 따로 필요하기에 물불을 가린다. 지구도 추울 땐 불을 때고 더울 땐 샤워를 한다. 지구의 적은 무엇일까.

 

방에 모처럼 앉아 있자니 겨울을 모르는 개미 서너 마리가 꿀 묻은 부스러기 꽃잎을 물고 간다. 저 개미를 손으로 누룰까. 스카치테이프로 누룰까. 아니면 비로 쓸어낼까 생각해본다. 나는 잠시 개미가 되어본다. 이 우주 안에 나도 개미보다 작은 미물 같은 존재일 텐데 하고 생각해본다. 억센 손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숱하게 쓸어버렸다. 나에게서 죽어간 모든 개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영역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인가. 방에서 눈에 띄지만 않았어도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작은 것이 내 밥을 축내는 것도 아니고 내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집안에서 개미가 나를 만나면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되다보니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개미에게 우악스러운 거대한 짐승일지도 모른다. 꿀 없는 꽃 한 송이를 작은 유리병에 꽂아본다. 개미가 유리병에 자신을 비추며 거울처럼 들여다본다. 나는 개미를 공손히 손에 받쳐 들고 폭신한 양지에 놓아준다. 작은 풀잎들이 개미를 환영해준다. 겨울에 피어나는 꽃처럼 개미의 겨울도 따듯하기를 바라면서. 오늘따라 겨울 햇살이 다습다. 12월의 넝쿨장미가 오늘따라 더욱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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