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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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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희
기사입력 2020-04-24

▲ 남상희 시인     ©

한동안 미세먼지 이야기가 뜸하긴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저학년 같아 보이는 친구가 마스크를 쓴 모습을 두리번거리면서 보더니 ‘코로나가 미세먼지를 다 먹었나봐’하면서 멋쩍어한다. 정말 그랬다.

 

요즘은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 써야 한다는 홍보도 쏙 들어갔다. 안팎이야기가 온통 코로나 때문에 미세먼지로 인한 마스크 이야기보다는 코로나가 먼저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다 보면 모두가 마스크 착용이 기본이 된듯하다. 어쩌다 급하게 나오다 보면 깜박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이라도 만날까 은근 걱정이 앞선다. 어쩌다 마주칠 때는 얼른 뒤돌아서서 멀찌감치 떨어져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요즘은 주일중 한 번만 사야하는 마스크도 정신 바짝 차려서 구입한다. 자신보다 타인의 대한 배려 때문에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바빠서 때론 너무 늦게 생각나서 구입하려고 하면 이미 다 팔린 후라 구입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그런 때보다는 요즘은 편하게 구입할 수가 있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사람들과의 접촉도 없고 그저 집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마스크에 대한 욕심이 적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아주 잠시 외출이라도 해야 할라 치면 필수품으로 마스크가 젤 먼저 챙겨야 한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도하지만 백신이 나오려면 시일이 걸린다고 하니 불편하지만 견뎌야 하는 인내심도 요즘 기르고 있다.

 

전에는 아침시간이 늘 바빴다. 하지만 요즘은 여유롭다. 오늘의 긴급소식을 모두 파악하고 나서야 움직이다 보니 아침에 TV채널을 여기 저기 돌리는 여유도 생겼다.

 

얼마 전 우연히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생활하는 부부이야기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내가 남편을 위해 카레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보고 갑자기 카레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선뜻 남편이 재료만 있으면 만들어 준다고 했다. 재료를 구입하려면 시장을 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망설이다 냉장고 여기저기를 정리하다 보니 몇 가지 재료가 나왔다.

 

남편은 손이 큰가 보다 둘만 먹으면 될 것을 이왕 시작했으니 이 사람도 생각나고, 저 사람도 생각나는지 작은 냄비가 아닌 들통에다 넉넉하게 만든 탓에 이웃과 나누고도 이틀 내내 삼시세끼를 카레만 먹었다. 그래도 맛은 제대로여서 한참 뒤에 또 생각날 것 같다. 그러다 밭에 지난해에 심어 놓았던 파가 겨울을 나고 봄날 제법 커서 그 맛도 달 근한 것이 건강식 만점이다. 넉넉하게 심어 놓은 탓에 지인들에게도 나누고, 매일 조금씩 챙겨 와서 파절이도 하고 부침도 만들어 먹어보지만 파는 줄어 들것 같지 않았는데, 밭 주변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조심스럽게 파좀 뽑아 드릴 까요가 인사가 되었다. 첨 만나는 사람들도 챙겨주면 어찌나 좋아 하는지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남편은 요리에 재미를 느꼈는지 남은 파로 또 육개장 요리를 한다니 있는 재료 찾아서 카레음식처럼 들통으로 한가득 만들어 놓으셨다. 요리하는 남자치고는 커도 너무 큰 손이 문제다. 가깝게 사는 사돈네도 한소끔 큰애 작은애 내외가 먹어도 남은 육개장을 며칠 내내 먹게 되었다.

 

남편은 요리를 잘 한다. 호박범벅도 잘하고 이번처럼 카레도 육개장도. 하지만 다음엔 적당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어디까지나 생각의 차이는 있겠다 싶지만 본성은 고치기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심성이 좋으니 과 해도 탓할 수가 없다. 되도록 주방을 남편이 아닌 아내가 맡아서 하는 것이 상책인 것을 또 깨닫게 된다. 솜씨는 없지만 나름 열심히 주방을 장악하고 사는 것도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봄날 아침상에 올릴 건강식은 어떤 것으로 할까 매일을 고민하는 소소한 행복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은 날이다.

 

그런 소일거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때론 힘들고 고단할 때도 있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새벽바람을 가르며 예초기로 풀섭을 오가는 맥가이버 농부 뒤를 촘촘히 따라가며 풀냄새에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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