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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모작 – 지인 B씨의 슬픈 노년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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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기사입력 2019-12-16

▲ 허억 명예교수(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면역학교실)  

미담이 되는 주위 사람의 인생2모작 대신 슬픈 인생2모작을 지금부터 얘기하려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 같아서이다. B씨 선친은 부지런히 농사일을 하여 가을추수 끝나면 농지를 조금씩 사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산 농지가 70년대 초에는 2만평이 넘었으니 동네에서 B씨 집을 박부자네로 불렀다. 박부자네 어른은 부지런히 농사일만 했지 자식 공부에 대해서는 등한시 했었고 B씨 또한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B씨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아버지 농사일을 열심히 도왔다. 70년대 초 B씨 동네 A시에 대단위 공단이 들어서면서 주위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박부자네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동네가 개발붐을 타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B씨네 집도 서서히 직업이 농업에서 임대사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B씨는 지인의 소개로 농지 일부를 매매한 자본금으로 남은 농지를 개발해 상가와 목욕탕을 지어 임대사업을 하였다.

 

삼십대 중반의 B씨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신분변화는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돈과 시간이 많아 친구들과 어울려 유흥을 즐겼다. 이렇게 흥청망청 살다가는 건강과 장래가 막막할 것 같아 B씨는 유흥을 멀리하고 건설장비운전을 배워 얼마동안 조수로 일해 경험을 쌓았다. 조수경험 후 독립해 직접 건설 장비를 구입해 건설장비업을 하여 꽤 재미를 보았다. 상가 및 목욕탕 임대사업과 건설장비업이 번창해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어느 날 서울 오촌당숙이 A시에 왔다가 집에 들여 하루 지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장밋빛 여관사업 얘기로 이어졌다.

 

오촌당숙의 말에 현혹되어 여관입지 및 상권분석, 여관장래성, 기존 여관과 추후 새로 신축될 여관들과 경쟁 등에 대한 치밀한 분석도 없이 여관업을 급히 추진했다. 부족 자금은 은행 담보 대출해서 남은 대지 350평에 연면적 650평 5층 건물을 신축하기로 급히 결정되었다. 차입 사업경영은 신중했어야 했는데 신축추진된 것이 큰 실수 중 하나였다. 시공에 따른 모든 관리는 오촌당숙이 총괄하기로 하고 서둘러 시작하였다. 이런 졸속추진은 기존사업이 잘 되 여유자금이 꽤 있었던 것과 들뜬 마음이 주요인 이였다. 그리스 신화에 ′잘 나갈 때 신도 질투와 시기를 한다′고 하니 무슨 일이든 잘 되더라도 낮은 자세로 매사 조심해야 하고 들뜬 마음을 잘 억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착성을 잃어 올바른 결정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관신축 중에 시행건설사가 부도가 나서 신축중인 건물에 채권자들이 유치권 행사를 했고 급기야는 건축 중단사태가 발생했다. 이래저래 건축공사는 지연되고 빚만 늘어나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채권자들의 유치권 해지는 건축주 B씨가 시공건설사 대신 변제해서 해결하고 다른 건설사와 다시 계약한 후 중단된 건축을 마무리 하였다. 이러한 건축과정에서 건축이 상당기간 지연되고 부실시공이 되어 많은 하자가 있는 건물이 되었다. 이 어려운 와중에 오촌당숙은 거액의 건축 자재비를 횡령해 더 많은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당초 계획된 자금보다 배나 더 소요된 건축물이 되어 많은 은행 추가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여관개업 일 년 뒤 주위에 더 좋은 여관들이 생겨 여관 경영에 많은 타격을 입었고 적자경영을 하다 은행 빚을 청산하기 위해 아주 싼값에 매도해 정리했다고 한다.

 

무슨 장사이든 간에 장사를 제대로 할러면 기존 업체보다 시설이나 서비스가 훨씬 좋아야 되고 또한 새로 생길 업체들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시설을 잘 해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사업경쟁이 치열해 살아남기 힘들어 중도 도태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업을 계획해야 한다. B씨는 숙박업에 대해서 사전 공부가 되어 있지 않았고 오촌당숙이 괜찮은 사업이라 하니 무턱대고 시작한 것이 큰 실수였다. 돈이 있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사전 철두철미한 계획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사업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업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도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없으면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여관신축과 여관업의 실패로 인해 많이 늘어난 은행대출 상환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목욕탕마저 정리하고 여러 해 동안 의욕상실로 힘든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사업경영난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B씨 안사람에게 심한 화병이 왔고 오랜 세월 힘들게 살다가 20여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집안의 난리통에 두 아들들에게 신경 쓰지 못 해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우지 못했다고 한다. 여든이 넘은 현 나이에 자식들에게 봉양을 받기는커녕 지금까지도 자식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신세라 하니 딱하기도 하다. 그 동안 아들 둘 뒷바라지 하느라 여러 상가를 팔아 도와주었지만 보람도 없이 어렵게 산다고 한다. 자식들은 B씨 선친과 B씨의 근면성실성 유전자는 물려받지 않고 매사에 게으른 것이 큰 문제라 한다.

 

지금 B씨는 오래된 조그마한 상가 임대수입으로 겨우 생활하지만 요즈음 경기가 안 좋아 임대가 되지 않아 임대수입조차 없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사보험이나 국민연금을 가입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항상 잘 살 줄 알고 그러한 노후준비 안 했던 것이 지금 후회막급이라 한다, 선친이 물려준 그 많았던 재산은 서천에 구름처럼 사라지고 지금은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몸이 아파 혹시 고독사가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아들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한다. 그들 또한 B씨를 부양할 능력도 마음도 없다고 한다. 지금은 먼저 간 아내가 그립고 아내에게 빨리 가서면 좋겠다고 자나 깨나 소망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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