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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미래, 시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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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주
기사입력 2019-10-22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지난 번에 읽은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남성이 전쟁터로 징용되면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 섹스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으며, 결혼도 프로그램에 원하는 조건을 넣으면 ‘매칭’시켜주는 상대와 하며, 아이는 인공수정으로만 얻을 수 있다. 주인공은 초등학생때 인공수정이 아니라 남다른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회에 의문을 갖는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사는 세계에서 옳다고 믿으며 하는 행동이 시대에 따라 이렇게도 심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번에 읽은 ‘시녀이야기’를 쓴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캐나다의 악명높은 여성범죄자를 다룬 소설 ‘그레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떤 작가를 만나면 늘 시리즈처럼 찾아 읽는 내가 우연히 집어든 책이 ‘시녀이야기’였다. 여성 작가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던 내가 그냥 시간을 보내려는 의도로 읽었는데, 읽는 내내 작가의 글쓰기 능력에 소름이 쫙 돋았다. 줄거리는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성질환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한 21세기 중반 미국이 배경이다. 나라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진 때를 틈타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가 일어나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한다. 특히 여성들을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여, 교묘하게 통제하고 착취하기 시작한다. 이에 평화롭게 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이름과 가족을 뺏긴 채 사령관의 '시녀'가 되어, 삼엄한 감시 속에 그의 아이를 수태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놀란 점은 첫째, 주인공이 체제에 순응하는 과정을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본인이 원하지 않던 시녀가 되면서 시녀의 마음을 너무나 절묘하게 표현했다. 주인공은 ‘나는 정신이 멀쩡하단 걸 깨닫는다. 제정신이라는 것은 소중한 재산이다. 사람들이 한때 돈을 비축했듯 나는 맑은 정신을 비축한다. 때가 되었을 때 모자라지 않도록 저축해 둔다.’라고 말하며 체제는 비록 미쳐버린 세상이지만 자신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상태로 살려고 애쓴다. 그녀는 ‘우리는 다리가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다’ 라며 애써 본인의 처지를 위로하지만 마음속으로 자신이 아이를 낳는 도구인 것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다 죽음이 다가오자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가고 싶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겠다. 그들이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시녀’라는게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경고한다. 꼭 미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위안부였을 때도 조선시대에 양반의 노리개로 취급받던 여종들도 그렇다.

 

둘째, 모든 억압된 시대에서 여성은 늘 약자라는 것을 다시금 알려준다. 주인공은 갑자기 이름과 아이와 자신이 번 돈을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빼앗긴다. 남편은 아무 것도 빼앗기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라는 말을 쓰자 주인공은 그에게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음을 알지만 그 말을 하면 더 상황이 나빠질 것을 알고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시녀들은 그녀들의 이름이 없어지고 오브프레드, 오브워렌, 오브글렌으로 불린다. 남성의 이름 앞에 소유를 뜻하는 of가 붙어있는 형태이다. 여성이 온전한 자궁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뉘는 설정이 너무나 끔찍하지만 있을 수 있고 늘 그래왔기 때문에 더 우울하고 소름끼친다.

 

셋째, 모든 사람들을 색으로 표현했는데 이미지와 역할이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계급 수호자가 결혼을 할 수 있는 계급이 되면 천사라 불리고 그들 위에 사령관이 군림하는데 남자들은 색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사령관의 아내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 즉, 폐경이 된 여성들로 푸른색 옷을 입는다. 중세에 푸른색은 천하거나 죄수를 나타내기도 했었다. 가사를 담당하는 하녀는 초록색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남녀 구분없이 회색이다. 시녀는 강렬한 빨강이다. 평범을 잃어버린 그녀들을 부각시키면서 언제나 보호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빨강을 입힌다.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으면 내내 마음이 무겁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며 쓸모가 없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것에 절망하게 된다. 다음에는 좀 더 희망을 주는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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