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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季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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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기사입력 2019-08-21

▲ 김영희 시인     ©

계절마다 계절이 내는 소리가 있다.

 

여름내 새벽이 되면 뒷문 창가에서 밈 밈 밈 밈 말을 걸며 참매미가 잠을 깨운다. 매미도 때를 아는지 그 시간이 어김없이 새벽 5시 30분이다. 매미가 깨운 나는 매미의 애타는 소리를 읽는다. 매미 소리는 내안의 소리를 끌어내 꿈틀댄다. 참매미는 주택가에서 많이 노래한다. 매미소리로 시작하는 아침을 열고 나와 본다. 말복이 지나고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되니 더위도 수그러든다. 초목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는 태양 황경이 150도가 될 때이다. 늦여름 소리가 불러내 문 열고 나오면, 소리 없는 꽃들이 초가을 이슬에 젖어있다.

 

숲이 무성한 곳에는 매미의 합창이 아직 우렁차다. 해질녘 숲에서는 말매미들이 귀가 따갑도록 짜르르르 합창을 한다. 마치 양철지붕에 굵은 소나기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말매미는 한 소절 소리를 낸 후 잠시 쉬었다 다시 합창소리를 낸다. 온통 매미가 사는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말매미는 주택 가까이 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귀뚜라미도 귀뚤귀뚤 가을이 온다고 조용조용 일러준다. 귀뚜라미 소리가 점점 선명해질수록 매미는 내 맘을 아느냐고 매엠 매엠 아쉬운 소리를 낸다. 매미소리는 여름을 닮았고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을 닮았다. 귀뚜라미 소리 들려오니 흥건히 쏟아지던 땀도 서서히 잦아든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었어도 여름이 뒷걸음질 치니 보내기는 서운하다. 올 여름은 이상하리만치 모기 없는 여름이었다. 모기도 그만큼 살아남기 어려운 기후였을까.

 

귀뚜라미가 낙엽에게 가을을 전부 내어줄 때쯤, 양털을 뒤집어쓴 바람으로 겨울은 올 것이다. 참새들이 재잘재잘 겨울을 쪼며 웅풍을 견디는 익숙한 풍경이 살아난다. 농부의 발자국에 새들의 발자국이 겹쳐지면 하얀 눈 이불 한 채 하늘이 포근히 덮어줄 것이다. 그 너머에 개구리는 봄을 부르고, 꽃들은 피어나 향기롭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계(四季)가 뚜렷하게 갈마드니 계절을 넘을 때마다 새롭다. 그 나무의 그 잎 그 꽃이건만 새롭게 피어서 새롭게 진다. 사계는 나의 감성이 타고 여행하는 열차다.

 

한없이 달구던 여름도 이제 고개를 숙인다. 요란하게 번쩍번쩍 우르릉 쾅, 검은 무게를 쏟아내던 하늘도 하얀 구름사이로 말갛게 얼굴을 내민다. 수런수런 익어가는 소리를 내며 가을이 빛깔을 낸다. 들녘의 알찬 무게가 인사를 한다. 8월의 하늘에 무지개마저 뜬다. 8월은 가을에게 무지개로 쓴 편지를 건네며 팔팔하게 걸어간다.

 

벌레 먹은 복숭아 같은 내 마음이 익을 때쯤이면, 꼭꼭 입 다문 침묵이 껍질을 벗을 것이다. 그리하면 가을처럼 준비한 아주 작은 씨앗의 꿈들이 거대한 창공의 어둠을 뚫을 수 있을까.

 

구름도 때로는 발소리를 남기고 바람도 때로는 발소리 깊다. 물은 제 발소리마저 안고 흘러가지만, 자연이 자라는 소리는 소리 없는 교향악이다. 오늘은 5시 30분이 지났는데 어제까지 노래 부르던 매미가 오지 앉는다. 매미 대신 귀뚜라미 몇 마리 이른 봄 개구리 입 떼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어제보다 한 시간이 지난 6시 30분 다시 매미가 운다. 어제보다는 소리가 느리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늦잠을 잔걸까. 서너 번 소리 내더니 조용하다.

 

초가을이 먹을 간다. 먹 가는 소리에 귀가 열린다. 새벽이 붓을 든다. 밝아오는 동창에 먹을 찍는다. 붓이 가을을 춘다. 아침이 감지 않은 눈을 곱게 뜬다. 새카맣게 타버린 내 가슴도 누군가의 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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