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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눈을 감아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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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기사입력 2019-07-02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42)

 

 

어느 날 눈을 감아보고는

 

                                  권태응

 

눈을 한참 감아보고는

갑갑한 장님을 생각해보고,

 

귀를 한참 막아보고는

답답한 귀머거릴 생각해보고,

 

입을 한참 다물어보고는

가엾은 벙어리를 생각해보고.(1950.5.22.)

 

*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시인     ©

생각하건대 모든 사람은 자기 속에 자기만의 아이가 있다. 어른이 되기까지 아이를 거쳐서 온 기억 속에 문화적 아이가 함께 저장되어 있다고 본다. 당연히 아이들 속에도 어른이 있으니, 아이들이 꿈꾸는 상상력을 배경으로 그 어른들을 관찰하는 섬세한 동심이야말로 판타지문학의 우선일 것이다. 무엇이든 나와 다른 것의 느낌을 알고 싶은 아이의 행위는 이렇듯 순수하니,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세상이나 사람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가는 것이다.

 

“눈을 한참 감아보고는 / 갑갑한 장님을 생각해보고 // 귀를 한참 막아보고는 / 답답한 귀머거릴 생각해보고 // 입을 한참 다물어보고는 가엾은 벙어릴 생각해보고”

 

몸이 아픈 권태응의 마음은 예민한 만큼 주변의 상황으로부터, 아이가 되어 열려있다. 그러므로 감옥에서 나온 이후 폐병을 앓으며 마음마저 여려졌을 권태응 속에는 권태응이란 아이가 생을 다할 때까지 함께 함으로써 그 많은 동시를 쓰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문은 덜컥덜컥 / ‘여보시오 여보시오’ // 세금쟁이의 무서운 / 엄마가 한참을 이러구 저러구... // 대문을 덜컥덜컥 / ‘계신가요 계신가요’ // 두부장수 할머니 / 엄마 따라 들어오고 // 대문을 덜컥덜컥 ‘여보세요 여보세요’// 우편배달의 커단 가방 / 서울서 아저씨 편지가 오고”(P.285. 대문을 덜컥덜컥)

 

권태응이 어른의 권위 없이 응시하는 아이들은 하는 냥이 뭣이든 사랑스럽다. 사려 깊지 못해도 눈치가 없어도 아이들의 행위는 순수하고 투명하다. 때문에 아이들 정서가 상투적인 것은 자연스럽고, 아이들 생각이 유치한 것은 당연하다. 권태응은 이렇게 속이 빤히 보이는 아이들의 상투성과 유치한 정서를 발견하고 받아들이지만, 권태응 자신의 처지에서 부러웠을지도 모르는 <꾀병>을 지을 때에는 차라리 꾀병에 걸렸으면.... 무수히 바람 했을지도 모른다.

 

“꾀병은 병이래도 /아프잖은 병 // 비위가 틀어지면 / 가끔 나는 병 // 꾀병은 약 안 써도 / 바로 낫는 병 // 눈치 보아 사알짝 / 고쳐내는 병”(P 285.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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